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랑인 친위대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바이킹의 기록에 따르면, 바랑인 친위대 중에서 [[하랄 3세|하랄 하르드라다]]라는 자는 황제의 사무실에서 직접 봉급을 받고, 황제 [[미하일 5세]]를 죽이고, 공주를 [[유괴]]했다고 한다. 이 사람은 나중에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. 어디선가 들어봤다 싶은 역덕이라면, [[헤이스팅스 전투]] 직전 [[스탬퍼드 브리지 전투]]에서 [[해럴드 2세]]에게 패해 죽은 그 사람 맞다. 다만 이 일화는 동시기 동로마의 사서들과 교차검증되지 않는다. 동로마 사서들끼리조차 하랄 하르드라다가 쫓겨났다는 것만 일치할 뿐,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일치하지 않는다. 한마디로 [[뻥카]]일 가능성이 꽤 높다. [[1차 십자군]]의 일부분이 친위대에 입대한 경우도 있었다. [[노르웨이]]의 시구르드 1세가 이끄는 6천 명의 십자군은 1107년 노르웨이를 출발해 예루살렘 왕국에서 활약한 뒤 육로를 타고 노르웨이로 돌아가려 [[콘스탄티노플]]로 향했다. 여기에서 황제 [[알렉시오스 1세]]는 이들을 극진히 대접했고, 이에 반한 많은 병사들이 바랑인 친위대에 입대하려고 했다. 시구르드 역시 이를 흔쾌히 수용하였다. 시구르드는 황제가 제공한 보석을 여비로 해서 육로로 노르웨이에 돌아갔는데, 십자군에서 큰 피해를 입지 않았음에도 그와 함께 돌아온 병사들은 백 명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. 여정 도중의 손실을 제한다고 해도 수천여의 모집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. [[파일:A_Thracesian_woman_kills_a_Varangian.jpg]] 동로마의 역사가 [[요안니스 스킬리치스]]의 책 '역사'에도 바랑인 친위대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, 한 친위대원이 트라키아인 여성을 겁탈하려다가 저항하던 여성이 친위대원의 창을 빼앗아 죽인 일이 있었다. [[정당방위]]였던데다가 바이킹들은 명예를 중시했기 때문인지 [[강간|명예 없는 행동]]을 한 친위대원의 소지품을 동료들이 모아서(즉 사죄금을 준거다) 그 여성에게 전달했다. 여담으로 [[동로마 제국/군대]]의 복원도들에서 볼 수 있듯 동로마군의 병사들은 가슴 부분에 가죽으로 된 [[하네스]]를 착용해서 [[호버크]]의 중량을 분산시키고 흘러내리지 않도록 했는데, 이 하네스를 일명 '''바랑인의 [[브라]](Varangian Bra)라고 부른다'''(...) 물론 [[브래지어]]는 원래 속옷이 아니라 팔/가슴 보호구를 뜻하는 의미였지만, 생김새도 브래지어 같이 보이다보니 간혹 역덕들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쓰이기도 한다. 참고로 '''저 하네스는 바이킹들이 아닌 [[페르시아]] 쪽에서 전해졌다'''. 이미 이전 기록이나 프레스코에서도 동로마 병사들은 이 하네스를 흔히 이용했는데 바랑인 친위대가 차고 다니는게 유명해지면서 이름이 붙은 모양. [[분류:노르드인]][[분류:동로마군]][[분류:바실리오스 2세]][[분류:용병]][[분류:스칸디나비아]][[분류:병과/고대~근세기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